옯철학) 사람은 본질적으로 탁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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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내용은 고전역학 베이스로 쓰여 있고, 글쓴이는 철학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다는 점을 알립니다.
양자역학은 거시적인 세계에서 고전역학과 똑같은 결과를 도출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 말(을 가장한 엄청나게 긴 수식)을 어떻게 다른지 이해할 정도로 똑똑하지 않아서.. 아시는 분 있으면 설명 부탁드립니다.
어떻게 미시적인 부분에서 다른데 결국 거시세계에 다르지 않은지.
+ 철학과 다니시는 분들 또는 물리학과 다니시는 분들의 비판을 기다립니다.
참고 개념) 라플라스의 악마, 불확정성 원리, 영원 회귀 등 니체의 사상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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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을 하늘에 던졌다.
앞면으로 떨어지든 뒷면으로 떨어지든 그건 확률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통계적으로는 맞다. 하지만 그 통계는 동전을 하늘에 던졌고, 그 동전은 앞면과 뒷면의 넓이가 같으며, 옆면으로 착지할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관계만 주었기에 나온 확률값이다.
만약 당신이 당신이 튕기는 그 힘, 바람의 세기, 땅바닥과의 거리 등 수많은 변수들을 알고 있다면, 당신은 1의 확률로 동전이 어떻게 떨어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확장해보자.
오늘 당신은 오르비를 켰다.
그리고 이 글을 보았다.
이후에 일어날 모든 행동은 이미 정해져 있다.
왜냐면 모든 변수는 이미 정해져 있고 불변값이기에.
지금 이 문장을 읽고 웃어넘기든, 그럴싸해서 끄덕끄덕하든 결국 당신은 똑같은 변수 하에 똑같은 행동을 할 것이다.
물론 그 똑같은 변수는 살면서 다시는 마주치지 못할 것이다.
지금 그 변수는 시간축 상, 당신의 생 중에서 유일할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지금 이 순간 세상에 있는 모든 변수를 안다면, 1초 후 세상이 어떨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1초 후 세상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면 1초 전 세상도 어떨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고, 이는 1초뿐만 아니라 무한히 확장가능하다.
당신의 삶은 당신이 태어나는 그 순간, 또는 1950년 6월 25일 첫 대포가 발사되던 그 순간, 또는 과거의 어느 순간을 잡더라도 이미 동일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동물이나 당신이 지금 보고 있는 화면의 액정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자유의지?
사람은 우리 자신이기 때문에, 또는 각종 종교인에 의해 특별한 존재처럼 여겨지지만, 사실상 당신이 현재 앉아 있는 의자만큼 운명이 정해져 있다. 굳이 운명까지라고 거창하게 부를 필요가 있나 싶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윤리적으로 다른 대상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냥 우리가 사람이어서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논리를 비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인간은 진화론적으로 승리하였고, 승리한 종은 그럴 능력이 있다.
다만, 육식 혐오자(또는 개고기 혐오자)들에게는 궁금한 게,
도덕적으로 어떻게 그 간의 차이를 규명했냐이다.
사람을 다른 대상과 본질적이게 달리 보는
이 세상의 모든 도덕과 윤리는 그러지 않으면 안 돼서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의 모든 도덕과 윤리는 그러지 않으면 '사회 유지가' 안 돼서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부모님 공경이나 이런 건 필수적이지 않느냐 말하는 사람이 꼭 있다.
근데 사실 엄밀히 따지면 그 편이 사회 유지에 이득이 되는 부분이 있어서이다.
(물론 나도 부모님 정말 사랑한다. 근데 그거랑 별개로 따져야 하지 않나 싶다.)
이렇게 모든 사회 규범은 꼭 지켜야 해서 있는 게 아닌 그냥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있는 것이 되었다.
니체는 이러한 방식으로 모든 규범을 차례로 무너뜨린 이후, '신은 죽었다'고 말했다.
신은 상징적으로 모든 '의무'이자 그 의무들을 인간들에게 지운 대상이었기에,
니체는 신이 죽었다고 말함으로써 인간을 모든 의무에게서 벗어나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의무의 폐허'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를 위해서는 앞의 변수 파트를 다시 뒤적이면 니체의 나름의 해답이 나온다.
변수가 같다면 같은 결과가 나온다고 했다.
변수 조건은 몹시 까다롭지만, 무한한 시간축 위에서 동일한 변수세팅이 꼭 다시 나올 것이고,
이는 무한히 다시 나올 것이다.
당신이 살면서 겪은 모든 고통과 행복을 당신과 동일한 어떠한 존재자가 다시 겪을 것이며,
이를 니체는 영원회귀라고 부른다.
불교의 윤회랑 비슷하다고 생각해도 좋겠다. 물론 극락은 없지만.
아무튼 이 영원히 반복되는, 해야 할 것이 없는 이 세상 속에서 인간은 어떠해야 하는가.
해야 할 것이 없기에 좌절하는 사람은 허무주의자일 것이고,
해야 할 것이 없기에 타락하는 사람은 쾌락주의자일 것이다.
해야 할 것이 없기에 자신의 해야 할 것을 정하는 사람은 '가치 설정자'로 니체가 극복인, 또는 위버멘쉬로 명명한 사람이다.
자신의 가치를 설정해 자신의 별을 찾아 가는 사람은, 어쩌면 칸트가 이야기한 자기 입법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그 많던 울타리들은 니체가 망치로 부숴서 다 없앴다. 이제 걸어갈 때라고 니체는 말했다.
3줄요약)
1. 존재자의 입장에서 인간 = 탁자
2. 당신과 동일한 어떠한 존재자는 당신의 인생 전체를 무한히 다시 겪을 것
3. 누군가의 기준을 자신에게 대입하지 말고 자신만의 가치를 설정하자.
4. ㅅㅂ 내가 도대체 뭘 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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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읽고 답글 하나 써봤어여
저도 윗댓분처럼 새 글 하나 파려고 글 쓰는데 자꾸 늘어지기도 하고, 스스로의 무지를 새삼 깨닫게 될 뿐인 것 같아서 적당히 쓰던 거 마무리하고 댓글로 답니다. 저도 똑바로 배운 건 아니라 틀린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양해 부탁드려요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철학자 중 작성자분의 의견과 같이 세계의 모든 것은 필연적이고 기계론적인 인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여러 선택으로부터 떨어져 이들에 영향을 받지 않고 오롯이 자유로운 의지로 이들 중 하나를 선택하는, 자기동일성을 지닌 자아는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하는 철학자가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스피노자가 이에 속하구요. 스피노자는 세계가 신(혹은 자연, 실체)의 필연적인 자기생산의 결과이므로, 달리 될 수 없었을 인과적 필연성을 지닌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자유나 우연성이라는 개념은 필연성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갖지 못한 사람들의 무지의 소산이라고 주장합니다. 그의 이런 생각은 고전역학으로 대표되는, 세계는 측량 가능하며 인과적으로 규명될 수 있다는 당대의 사상사적 분위기?에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고 하네요.
반면 니체 역시 자유의지를 부정한 것은 맞지만, 이는 세계를 인과적으로 연결된 기계론적 실체로 보았기 때문은 아닙니다. 오히려 니체는 인과성이라는 관념이 언어가 만들어 낸 허상이라고 주장합니다. 주어와 술어라는 구조를 갖는 언어 체계는 어떤 현상의 배후에 그 원인이 되는 주체가 있다고 믿게 합니다. 그는 「도덕의 계보」 제1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강한 것에게 강한 것으로 나타나지 않기를 요구하고, 그것이 압박욕, 제압욕, 지배욕, 적대욕, 저항욕, 승리욕이 아니기를 요구하는 것은 바로 약한 것에게 강한 것으로 나타나기를 요구하는 것만큼 불합리하다.
일정량의 힘이란 바로 그와 같은 양의 충동, 의지, 작용이다. (중략) 오직 모든 작용을 작용하는 자, 즉 ‘주체’에 의해 제약된 것으로 이해하고 오해하는 언어의 유혹(언어 속에서 화석화된 이성의 근본 오류) 아래에서만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사람들이 번개를 섬광에서 분리하여 후자를 번개라 불리는 어떤 주체의 활동이며 작용이라고 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민중의 도덕도 마치 강자의 배후에는 강한 것을 나타내거나 나타내지 않는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일종의 중립적인 기체가 있는 것처럼, 강한 것을 강한 것을 표현하는 것과 분리한다. 그러나 그러한 기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활동, 작용, 생성 뒤에는 어떤 ‘존재’도 없다. ‘활동하는 자’는 활동에 덧붙여 단순히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활동이 모든 것이다. 사람들은 번개가 번쩍일 때, 실제로는 활동을 중복시킨다. 이것이 활동의 활동이다 : 같은 사건을 한 번은 원인이라고 보고 다른 한 번은 결과라고 보는 것이다. 자연과학자들이 “힘이 움직이게 한다. 힘이 무엇을 일으키는 원인이다”라고 하며 그와 같은 것을 말했지만, 사태를 좀더 잘 만든 것은 아니다.- 우리의 과학 전체는 그 모든 냉정함, 감정에서 해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언어의 유혹에 사로잡혀 있으며, ‘주체’라고 하는 뒤바뀐 기형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또한 텍스트를 찾지는 못했지만 그의 저술 전반에서 필연적 인과라는 관념에 대한 비판이 자주 나타납니다.
여기까지 쓰다가 글이 막혀서ㅠㅠ 이만 줄입니다
지나가다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ㅎㅎ 다만
그는 자유나 우연성이라는 개념은 필연성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갖지 못한 사람들의 무지의 소산이라고 주장합니다.
요기서는 사실 자유라는 말 대신 자유의지라는 말이 오는게 맞을 거라 생각해요. 스피노자는 분명 어떤 A와 B사이에서 A를 선택할 것인지 B를 선택할 것인지를 자유롭게 결정할 '의지의' 자유 (자유의지)는 없고, 우리가 흔히 그런게 있다고 생각하는 거는 원인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한 허상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또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유로울 수는 있다고 이야기하거든요. 단 이때의 자유는 여러 선택지들 사이에서 무엇인가를 선택하는 자유는 아니고, 그게 무어라고 구체적으로 딱 잘라서 설명하기는 쪼금 복잡하지만, 어쨌든 자신의 본성과 이성 (이런것들은 이미 주어져있지만!)에 따라 행동하는 것, 그러니까 이미 정해진(?) 자기 본성에 따라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펼쳐내는 것 (ex-plicare) 정도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저는 개인적으로는 이 얘기를 "나는 나이지만 (나는 나이도록 강제되지만), 내가 나인 한에서 나는 자유롭다"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였어요 (엄밀함은 개나 줘버린 거긴 하지만).
여담이지만 "나는 나이지만, 내가 나인 한에서 나는 자유롭다" 내지는 "자유의지는 없지만, 자유는 있다" 라는 문장들에 담긴 역설을 곱씹어나가다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윤리적으로 다른 대상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에 대한 답을 내릴 수 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운명이 결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탁자와 인간이 같다? - 는 말이 설령 사실이라 할 지라도, 인간이 탁자와 다른 이유가 "인간이 진화론적으로 승리해서" 그렇다는 말에는 반대하는데요.
나의 모든 본성들 운명 미래가 결정되어 있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자유로울 수 있다는 사실이나, 뭐 논리적으로는 인간이 탁자와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탁자와 다르다는 것이나...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방점을 찍고 싶은데, 그건 이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에 철학의 그리고 인간의 (철학하는 인간의) 아이덴티티가 담겨있다고 생각해서에요. 따지고 보면 언제나 철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와 관련이 있거든요. 모든 '논리적인' 증거가 이쪽을 향함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높은 곳, 논리적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곳을 바라보면서 저게 진짜라고 주장하는게 철학자니까. 그런 맥락에서 언젠가 헤겔은 철학이란 '전도된 세계'라고 한 적이 있는데, 논리적으로 말이 되는 세계가 당연히 원래는 진짜 세계지만 철학자는 언제나 그 세계를 "가짜 세계"라고 규정하고 "사실은 아니지만 사실'이어야만 하는'" 어떤 이상향을 진짜 세계라고 규정하기 때문이에요. 말하자면 철학자는 "이게 사실이야"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이게 사실이어야만 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라고나 할까요? 단지 사실어야만 하는 걸 사실이라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철학은 전도된 세계인거구...
그래서 우리 인간이 만약 과학적으로는 유전자의 탈 것이라고 할 지라도 우리가 그 사실을 부정하고 우리가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한에서 우리는 자유롭고, 우리가 정말정마로 실제로 게임 캐릭터라고 할 지라도 우리가 엥 몬소리야 생각도 하고 사랑도 하고 여기가 진짜인데 - 생각하는 한에서 우리 세계는 영원히 진짜 세계일 것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마찬가지 맥락에서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는 세계에서도 인간은 (그리고 인간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하고, 스피노자도 아마 비슷하게 생각했을거라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바로 그 사실이 인간이라는 존재자를 특별한 존재자로 만들어준다고 생각하구요. 니체도 겉으로는 툴툴거리고 이사람 저사람 다 잡아다가 까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든 의미가 사라진 '허무주의'의 세상 속에서도 내가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한 점에서,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컨텍스트 속에서 생각한 사람일거라 생각하구여. 이러한 점은 아마 '능동적' '허무주의'라는 말 자체가 지닌 어떤 모순 형용 속에서도 드러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니깐 이 역설적인 말이 지닌 '모순'을 곱씹다보면 결과적으로는 모든 철학자들이 공통적으로 견지한 그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자세가 드러난다고 저는 믿어요
정말 감사합니다ㅎㅎ
제가 잘 이해되지 않았던 것 중에 자유의지를 부정한 스피노자가 슬픔과 같은 정념에서 벗어나라고 하거나, 강한 자는 의지로 강하기를 선택한 것 아니라고 한 니체가 낙타가 사자가 되고 어린아이가 되기를 요구한 게 있었는데
마찬가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제가 잘 이해되지 않았던 것 중에 자유의지를 부정한 스피노자가 슬픔과 같은 정념에서 벗어나라고 하거나 -
스피노자는 자유의지를 부정했는데 그러면 슬플지 말지도 자기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을까? 정도의 의문이라고 이해했는데요.
간단히 말하면 스피노자가 이야기하는 자유는 '능동성'이고, 능동성이란 자기 스스로가 자기 자신의 원인이 된다는 이야기, 그러니깐 나의 원인이 나의 내부에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정념이란 말하자면 '수동적' 정서인데 예를 들어 우리는 사(오)수를 하게 되면 슬퍼하고 어젯밤에 건 토토가 잘 안 풀리면 슬퍼하지만 그런 것들의 경우 사실 내가 알든 모르든 나의 외부에 어떤 숨어있는 원인이 존재하고, 따라서 이런 것들의 원인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나의 외부 대상에 있는 것인데, 나의 외부 대상에 의해 내 정서가 좌지우지되고 그게 나한테 영향을 끼치면 그건 확실히 능동이라기보다는 수동인 셈이니까요.
흥미로운 건 스피노자가 그런 수동적 정서는 보다 강한 능동적인 정서에 의해서 억제되고 제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는 점입니다. 이때의 능동적 정서라 함은 이성에 의한 적합한 인식, 그러니까 이성에 따르는 삶을 이야기합니다. 물론 이 지점에서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인데, 우리가 필연적인 자연의 인과법칙을 따른다면 도대체 이성에 의한 능동적인 삶이 어케 가능할까? - 하는 생각이 들게 되어 있으니까요.
스피노자에게 있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신, 즉 자연이 자신을 펼쳐낸 결과입니다 (스피노자의 신은 곧 자연이고, 펼쳐내는 신과 펼쳐진 신이 결국은 동일하다고 그는 이야기하는데, 결국 스피노자에게 있어서 신이라는건 이세상 모든 것들이 그야말로 모든 것들이 하나가 되어 앞으로 앞으로 흘러가는 그 자체?? 저는 그런 뉘앙스로 항상 이해를 하게 되는데요).
우리 또한 당연히 신, 즉 자연의 일부이고, 자연의 무한한 연쇄적인 인과법칙의 일부일 터인데,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는게 곧 자유라고 스피노자는 이야기를 해요. 그러니깐 우리는 반드시 이러이러이러케 될 수 밖에 없도록 사전에 설계된? 결정된 존재이고 일어난 모든 일들은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건데, 그 사실을 올바르게 받아들이는게 곧 자유라고요.
그렇게 인식하는 한에서 우리는 일종의 '자기 원인'이 되고 능동적인 존재가 되는 셈인데요. 그건 왜 그러냐면 우리가 이러이렇게 결정된거에 따라서 강제되어 행동을 하기야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는 결국 우리한테 미리 주어진 우리의 본성을 있는 그대로 풀어내는거니깐, 우리의 행동의 원인은 우리의 본성이 되는 것이고, 결국 우리의 스스로가 우리 스스로의 원인이 되는 셈이니까요. 일어난 일들을 놓고 슬퍼할 때 사실 그 일어난 일들은 우리의 통제를 벗어난 어떤 원인을 가지는데 그 원인에 종속되어 슬퍼하게 되면 그건 확실히 수동적인거니깐 구분해서 생각하시면 될 것 같네요.
그런 맥락에서 나는 발버둥을 쳐도 나일 수 밖에 없고, 나는 나이도록 강제되지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나는 나인 한에서 무한히 자유롭다 - 라는 다소 알 듯 모를 듯 한 이야기에 나름대로의 활기가 돌게되지 않을까 싶구여
즉, 스피노자에게 있어서의 자유는 어떤 두 대상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자유의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거라는거죠. 자유는 그냥 그래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어 하면서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펼쳐내는 것이거든요. 여전히 "엥 그걸 펼쳐낼지 말지 그런 생각을 할지 말지가 강제되어 있는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하실 지도 있겠고 직관적으로 와닿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은 저도 동의하지만, 내 눈 앞의 물을 마실지 말지의 문제, 지금 이 댓글을 쓸지 말지를 결정하는 문제와... 자연의 필연성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문제 사이에는 어딘가 미묘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아울러 스피노자를 포함한 근대 철학은 어떤 의미에서는 자유를 구원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었어요.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의 경우 신이 전지전능하다면 어떻게 인간이 자유로울 수 있을까의 문제와, 스피노자의 경우 이 세상 모든 것이 필연적으로 결정되어 있다면 인간이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을까의 문제와 씨름한 셈이고, 이 과정에서 철학은 (언제나 그랬듯이) '과학으로 환원되지 않는' 인간의 존엄성을 밝혀내기 위한 길을 걸었는데요.
스피노자에 관해서 길게 썼지만, 어쨌든 자유의지가 없지만 능동적으로 살 수는 있다, 자유로울 수는 있다, 나는 나일 수 밖에 없지만 그런 한에서 자유롭다 - 이런 이야기는 분명 역설적이죠. 역설이란 언제나 논리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인데, 그 논리적 이질감은 어디에서 오냐면 분명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컨텍스트에서 온다고 저는 생각해요. 윗문단의 표현을 빌리자면 '과학(논리)으로 환원되지 않는' 존엄을 밝혀내려다보니깐 그런 일이 생긴다고 볼 수 있을거고. 그래서 질문하신 내용 자체에 대한 제 답은 저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 정도가 될 것 같아요.
철학은 언제나 언제나 그랬거든요. 플라톤같은 경우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이데아의 세계가 진짜 세계라고, 우리가 살고 있는 여기 세계가 그 이데아의 그림자라고 이야기했고, 오컴과 같은 경우 날카로운 면도날로 과학의 세계와 이데아의 세계를 도려냈으며, 데카르트의 경우에는 신은 전지전능하지만, 우리 인간은 사유하는 한에서 다른 무엇에도 불구하고 존재한다고 이야기했고, 스피노자는 모든 것이 결정된 세상에서도 우리는 자유롭다고 이야기했고... 라이프니츠도 비슷하고 하이데거 같은 경우에는 논리적으로는 우선하여 존재하는 과학의 세계가 사실은 우리의 생활세계의 파생적 변양태라면서 과학에의 맹신을 비판했고, 비슷한 시기의 후설은 대표작인 '데카르트적 성찰'을 다음과 같은 아우구스티누스의 문장을 인용하며 갈음하기도 했어요 : 아우구스티누스는 "밖으로 나가지 말고, 너 자신으로 들어가라. 진리는 인간의 마음 속에 깃들여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깐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경험과학은 언제나 사실과 논리에서부터 근거를 찾고 사실이 아닌 것은 당연히 비웃고 배척하지만, 철학은 그렇지 않는다는 거에요. 철학자는 사실에는 관심이 없고 사실이어야만 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니깐. 말하자면 사실과 사실이어야만 하는 것 사이의 간극이 철학에서의 거의 모든 역설을 유발한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철학자를 앞에 세워두고 이것봐라 탁자랑 인간이 사실 똑같지 않냐? 논리적으로 생각해봐라 - 라고 이야기해봤자 그는 코웃음을 치면서 다른데? 라고 이야기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철학자는 탁자랑 인간은 '달라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다르다고 주장하기 때문이고요. 다른 한 편으로, 달라야만 한다고 우리가 믿는 선에서 분명 다를 것이고 존재하는 모든 존재자들 중에서 '달라야만 한다' 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게 우리 인간 뿐이라고도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게 바로 인간을 특별하게 만들어준다고도 생각하고요). 그런게 어떤 맥락에서는 철학자를 허울 좋은 소리나 하는 사기꾼처럼 보이게 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철학이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지점에 대한 영원한 추구인 바, 철학자들에게는 그런게 프라이드거든요. 결국 철학이란 지혜를 손에 넣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영원히 '사랑'하는 것이고, 그런 한에서 철학자는 내가 결코 될 수 없는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추구하는 사람들이니까요
저는 스피노자가 인간을 비롯한 많은 양태(소산적 자연)와 신을 별개의 존재로 보지 않았지만, 분명 능산적 자연으로서의 신과 신의 펼쳐냄인 인간을 구분했다고 이해했는데, 다른 많은 양태와 필연적 인과관계를 맺는 소산적 자연인 인간이 능산적 자연인 신처럼 자기원인일 수 있나요?
그리고 혹시 제가 전에 알던 분인가 해서...
혹시 맞다면 플라톤 관련해서 글 쓰셨을 때 정말 좋았어요.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고 어렴풋한 인상으로만 남아 있긴 한데... 저는 플라톤이 세계를 박제하고, 이데아와 현실을 철저하게 구분한 딱딱한 사람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렇게도 볼 수 있구나 싶었거든요
아니라면 죄송합니다ㅠ
엄밀하게는 인간을 자기원인이라 볼 수 없어요. 자기 자신에 의해 존재하는 것 (per se, by itself)을 스피노자는 실체라 부르는데 스피노자에게 있어서 실체는 신 밖에는 없거든요. 다만 우리가 우리 스스로가 신(=자연)의 펼쳐냄의 일부라고 인식하고 그 인과관계의 한 부분이라는 거를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그저 우리한테 주어진 본성을 있는 그대로 펼쳐내게 되고, 그런 한에서 우리는 '일종의' 자기원인 (그러니깐 엄밀히는 아님!) 이 되고, 인간의 자유는 이런 맥락에서 신의 자유와 상당히 유사해지게 되는 거죠.
그러니깐 우리는 어떤 무한한 인과관계의 일부인데, 신이라고 한다면 그 무한한 인과관계 전체가 신의 펼쳐냄의 결과이니깐 신은 절대적인 자기원인이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그 무한한 인과관계는 우리 자신을 넘어서있는거니깐 절대적 의미에서 우리는 자기원인은 아닌데요,
다른 한 편으로 우리는 그 절대적 인과관계의 일부분이고 우리 스스로도 우리한테 주어진 어떤 우리 자신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펼쳐내고 있는 거니깐, 만약 우리가 정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러니깐 나는 나일수밖에 없어 ㅎㅎ 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살아간다면 (너무 편한 언어로 막 쓰는거같긴하네요 ㅎㅎㅎ)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자신의 원인이 되는 셈이니까요. 엄밀히는 자기원인이 아니지만 일종의 자기원인인거구 그래서 우리의 자유와 신의 자유가 흡사해지는 셈이져. 신이 자신을 펼쳐내고 있는 그림의 어딘가에서 우리가 우리를 펼쳐내고 있는? 그림이 속해있다고나 할까여?? 우리는 신의 일부니까...
따지고보면 인간이 신의 펼쳐냄의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에 절대적 의미에서 자기원인이 될 수는 없는 것이고, 그렇지만 우리는 이 무한한 우주의 틀림없는 '일부'이기 때문에 또 '어떤 의미에서는' 자기원인이 될 수 있고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고!
여담이지만, 그래서 스피노자의 자유는 결국 '신'을 인식하는 건데요. 신을 인식한다는 건 이 무한한 우주와 이 무한한 우주가 굴러가는 거를 인식하고 그 속에서 내가 함께 굴러간다는? 그런걸 인식하고 이해한다는 거잖아여? 그래서 스피노자의 철학의 끝에는 'Amor dei' (신,즉 자연 - 그러니깐 우주 전체!에 대한 사랑)가 있는 것이고 (니체의 철학에 운명에 대한 사랑 (아모르파티)가 있는거랑 비슷하다 생각해여), 스피노자가 실제로 한 말이든 아니든 막론하고, 스피노자는 내일 세상이 망하더라도, 기꺼이 사과나무를 심을법한 사람인거구여 ㅎㅎ. 따지고보면 우리 모두 어느 내일에 우리 세계가 망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사과나무를 심으며 살아가잖아여? 그런게 어떠 ㄴ의미에서는 모든게 결정된 세상에서도 인간은 자유로울 수 있다는 인식과 일맥상통한다고 저는 생각해여. 그걸 말로 표현하기는 어딘가 힘들지만...
감사합니다. 알 것 같기도 모를 것 같기도...하네요ㅎㅎ
사실 제대로 쓰려면 너무 길어져서 ㅠㅠ 스피노자는 디게 복잡하고 어렵지만 또 엄청 매력적인 철학자라고 생각해여... 단지 댓글창에다ㅏ 쓰기에는 너무 긴 얘기들인데, 어쩌다보니(?) 댓글창에다가 쓸 수 밖에 없게 되어버렸네여 ㅋㅋ...
번쩍이는 현상을 번개라고 할 뿐이지
번개가 번쩍이게 하는 건 동어반복이라는 거군요.
다만 이건 어떠한 특징을 설명할 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가령 장미가 빨갛다 할 때 빨강이 장미라는 뜻은 아니니까요.
기계적 인과의 비판이라..
모든 일은 또다른 모든 일의 인이자 과이기 때문에(심지어 과거 일이 과이고 현재 일이 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네요. 시간이 정방향으로 흐른다는 것은 우리 입장이니..) 그런 건지 궁금하네요.
저는 위 글을 적으면서 물아일체라는 말을 다시 깨달은 것 같습니다.
물과 인간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른 대상이 아니므로.. 내외의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우리가 책상과 의자, 생물과 무생물, 나와 너, 내 몸 안과 밖으로 임의로 구분한 것이지, 결국 다 존재자라는 입장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요.
제가 죽는다고 해도.. 평소 한 덩어리였던 돌이 쪼개져 모래가 되는 것마치 큰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니 참 미묘하네요.
인과가 허상이라는 데는 동의합니다. 언어 쪽으로 생각했던 건 아니고 그냥 원인은 그 이전의 세계로 무한히 회귀가능하니까. 그리고 원인 부정이 결과 부정이라는 보장이 없어서(feat.국어지문). 언어적 관점도 재밌네요. 좋지 않은 곳에 단정적인 인과성이 스며서 생각할 때 불편한 경우가 많을 것 같아요. 세상이 결정론적이냐 확률적이냐 하는 건 자유의지 논쟁이랑은 별 상관 없다고 생각하고..
제 생각엔 니체 엄마가 니체를 많이 혼낸 것 같아요.
엄마: 너 착하게 안 살면 산타할아버지가 잡아간다!
할아버지:잉간이~! 도리를 지켜야지!!
도덕이 신성불가침하지 않음을 깨달은 니체:에엑따~~!!!충격!!
근데 도덕이 사회유지의 도구라기 보다는 비슷한 도덕적 본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사회가 형성된 게 먼저인것 같아요. 역시 쪽수가 짱이죠?
간만에 니코니체한 글이었네요. 니체? 잘? 모르지만.
영원회귀는 딱 들으면 어거지에 개소리라고 생각.(일단 존재 연속성이 없어서 공감이 안되고, 지적하려면 끝이 없) 비유적으로는 대중적이고 메시지도 좋아요. 하지만 굳이 저렇게 전달해야 했던 걸까.. 걍 이터널 모멘트나 이 순간을 아껴라 정도면 적당했을것 같아요.